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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안부곡

'걷는 마음'을 촉발한 한마디 말에 대하여

[준토스뮤직]

 

며칠째 흐리고 비 내리다 문득 갠 오늘 같은 날 산책길에 듣고픈 경쾌한 노래입니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에서 엔딩곡으로 흘러나와 유명해진 융진의 '걷는 마음'입니다. 

 

융진은 모던록 프로젝트 밴드 '캐스커'의 리드 싱어. 키 큰 개그우먼 이은형의 언니로 역시 170cm이 훌쩍 넘는 장신의 여가수 이융진(본명 이은진)의 활동명입니다. '걷는 마음'은 캐스커와 별도로 2016년 발표한 솔로 앨범 수록곡입니다.

 

경쾌한 선율과 창법만 놓고보면 모던록 밴드 페퍼톤스의 '공원여행'(2009)가 엇비슷합니다. '공원여행'을 부른 객원가수 김현민과 융진의 음색이 살짝 비슷한 점도 두 곡의 친연성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가사를 음미해보면 천양지차의 노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원여행'은 친구나 연인이 하교길 공원에 잠시라도 들려서 산책과 충전의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건강한 마음이 담긴 노래입니다. 반면 '걷는 마음'은 무심해 보이는 산책이 실은 실연의 아픔을 달래고 마음의 갈피를 잡기 위한 애달픈 몸부림임을 나즈막히 고백하는 노래입니다. 빈 손으로 느슨하게 걷는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 '파도같던 그 한마디'와 함께 떠나간 너에 대한 '무성한 기억의 수풀'을 헤메이는 것이라는 슬픈 고백. 

 

'걷는 마음'을 관통하는 가사는 '파도같던 그 한마디'입니다. 잔잔한 일상을 뒤흔드는 파문이 오래 전 그 한마디의 여파임이 드러나기 때문.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억의 수풀을 이리저리 헤치고, 비틑비틀 걷고, 누구도 위로 못할 아픔 속을 헤메이게 하는 게 다 한마디에서 연원합니다. 얼마나 비수처럼 꽂히는 말이었기에... 

 

'논어'에는 '사불급설(駟不及舌)'이란 표현이 등장합니다. 세치 혀에서 나오는 말이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보다 빠르고 멀리 간다는 자공의 문학적 표현입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우리 속담에 비견되는 표현이죠.

 

그럼 그 공간성과 시간적 대구를 이루는 표현은 없을까요? 말에 의한 상처가 육체에 입은 상처보다 더 오래간다는 표현. 그에 딱맞는 사자성어를 찾아봤는데 '나쁜 말은 씻어내기 어렵다'는 뜻의 '악어난소(惡語難消)'가 가장 유사. 

 

그래서 아쉬운대로 제가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사불급설 언구어독(駟不及舌 言久於毒).'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가 세치 혀에 미치지 못하고, 말이 독보다 더 오래 간다'는 표현.

 

발 없는 말이 천리를 빠르게 달려 가듯이 말로 인한 상처는 독에 중독되는 것보다 깊고 오래갑니다.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수반됩니다. 그러니 속에 있는 말을 거침없이 꺼내는 걸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하기에 앞서 험한 말, 거친 말을 함부로 던지는 것이 우물에 독을 푸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융진의 '걷는 마음'이 나즈막히 속삭이는 메시지입니다.

 

 

아무 것도 들지 않은

빈 두 손 느린 걸음에

마음은 느슨해져만 가네

 

어느새 높게 자라난

무성한 기억의 수풀

이리저리 그 사이를 걷네

 

지나가는 동네 길고양이

잡을 수 없는 지난 날처럼

쏜살같이 사라져

 

그 누구도 위로 못 할

이 마음 속을 헤매이네

 

어디로 가는지 달려가네

알아도 달라질 건 없네

 

어느새 높게 자라난

무성한 너의 기억에

비틀비틀 그 사이를 걷네

 

파도같던 그 한마디 속에

모든 걸 잃고 스러져 버린

그 순간이 떠오르면

 

별수 없이 밀려오는

이 아픔 속을 헤매이네

헤메이네

 

무심한 척 걷는 이 길 위에선

흘러내리는 눈물 따위

티내진 말아야지

 

그 누구도 위로 못 할

이 마음 속을 걷고 있네

헤매이네, 떠오르네, 또 걸어가네

 

 

https://www.youtube.com/watch?v=V_AHBnWDAIc&list=RDV_AHBnWDAIc&start_radio=1

 

 

 

-2026년 8월 23일(뭉게구름 사이 파란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