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기 노래 중에서 나만이 간직하고픈 보석 같은 노래가 있습니다. 1972년 양희은 2집에 수록되며 처음 알려진 '그 사이'라는 곡입니다. 양희은이 부를 때와 달리 김민기가 부르는 버전에선 2절 부분부터 여성 중창단의 백보컬이 가미돼 김민기 노래에선 좀처럼 찾기 어려운 희망참과 경쾌함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문에 김민기 노래같지 않은 노래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과연 그럴까요? 김민기의 노래는 기본적으로 죽음을 품고 있습니다. 한국가요사에서 김민기처럼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또 노래한 가수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삶의 터전인 여기서 죽음의 공간인 저기를 응시하는 노래들입니다. '아침이슬'이 그렇고, '친구'가 그렇고, '그날'이 그렇고, '작은 연못'이 그렇습니다.
이 노래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밤과 낮이 엇갈리는 해질녁은 요즘 표현으론 '개늑시'라고 하죠. 개와 늑대를 분별하기 어려운 시간을 말하니 낮과 밤,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시공간입니다. '그 사이'라는 제목마저 정확히 그런 회색빛 시공간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그곳에 가겠다는 뜻은 곧 삶과 죽움의 경계로 가겠다는 소리가 됩니다. '아침이슬'에서의 묘지이자 '친구'에서의 검푸른 바닷가이고, '그날'에서 꽃밭에 꽃이 더이상 피지 않는 날이자 해가 지는 날, 별이 지는 날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인 '그 사이'를 지향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외롭고 무섭고 절망적인 삶일까요? 아닙니다. 이 노래의 선율이 말해주듯 설렘과 희망이 깜빡이는 삶입니다. 하늘이 펼쳐지고, 갈잎이 바람에 날리고, 호롱불 밝힌 오두막이 있고, 별들의 노래소리가 밤새 들리는 시공간이 열리는 곳입니다.
마찬가지로 '아침이슬'은 죽음이라는 절대적 절망 앞에서 찰나의 아름다움을 지닌 아침이슬이 상징하는 희망의 진가를 길어올립니다. 설움과 시련을 이겨낼 '작은 미소'의 아름다움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의 용기를 배웁니다. 또 '그날'은 꽃으로 상징되는 아름다움과 해와 별로 대표되는 영원함이 사라져버리는 죽음의 세계를 상상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안식과 평온이 왜 우리네 삶을 구원하는지를 깨닫습니다. '싸움터의 죄인'으로 그려진 증오와 '마음 속 그님'으로 포착된 사랑조차 무화시키기 때문임을.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엿본 사람은 압니다. 죽음 앞에 우리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필멸의 존재인 우리는 모두 '처마 밑에서 울고 서 있는 한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아이의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려는 마음을 귀히 여기는 것이 삶이 주는 귀하고 아름다운 선물임을.
이렇듯 김민기의 노래는 일깨워줍니다. 죽음을 응시하는 것은 곧 삶을 깊이 응시하는 것이며 '메멘토 모리'를 기억할 때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이 열린다고. 또 김민기 노래의 그라운드 제로가 죽음이라는 것에서 우리는 또 깨닫게 됩니다. 죽음은 좌절과 절망의 최종 이정표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애수와 순정이 펄럭이는 깃발임을.
해 저무는 들녘 밤과 낮 그 사이로
하늘은 하늘 따라 펼쳐 널리고
이만치 떨어져 바라볼 그 사이로
바람은 갈댓잎을 살불어가는데
이리로 또 저리로 비껴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
해 저무는 들녘 하늘가 외딴 곳에
호롱불 밝히어둔 오두막 있어
노을 저 건너에 별들의 노랫소리
밤새도록 들리는 그곳에 가려네
이리로 또 저리로 비껴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
노을 저 건너에 별들의 노랫소리
밤새도록 들리는 그곳에 가려네
이리로 또 저리로 비껴가는 그 사이에
열릴 듯 스쳐가는 그 사이 따라
https://www.youtube.com/watch?v=OyVg9c6RQSc&list=RDOyVg9c6RQSc&start_radio=1
-2025년 7월 22일(땡볕 더위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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